서울 청담동 최고급 빌라촌과 명품 브랜드 플래그숍들 사이에 자리한 이유진갤러리는 현재 강남에서 보기 드문 멋스런 공간이다. 1980년대 강남스타일의 2층 집을 외양은 살린 채 내부를 화랑으로 꾸몄다. 잘 가꾼 잔디 정원과 나무들에서도 격조가 느껴진다. 지금까지 평면 작업만 소개해온 이 공간에 처음으로 설치 작업이 들어섰다. 이혜민 작가의 ‘수천 개의 물방울(A Thousand water drops)’전(8월 13일~9월 2일)이다.
 

작가 이혜민 ‘수천 개의 물방울’전
내달 2일까지 이유진갤러리서
분홍·코발트 등으로 색상 확대

제목은 ‘작은 물방울이 모여 바위를 뚫는다’는 뜻의 ‘수적천석(水滴穿石)’에서 따왔는데, 이는 작가의 작업을 지탱해준 좌우명 같은 것이다.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자마자 어린 며느리가 되어 시부모를 모셔야 했던 작가는 시집살이의 고단함을 시댁 지하실에서 이겨냈다고 했다. “거기엔 시어머니가 시집올 때 해온 오래된 비단 이불도 쌓여있었는데, 그걸 써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어요. 천을 잘라내고 솜을 꺼내 손바느질로 작은 베개나 쿠션을 만들었습니다. 힘들 때 머리를 기댈 수 있고, 가끔 눈물도 닦을 수 있는.”
 

 

그렇게 만들어진 쿠션이 상자에 가득 쌓이자 작가는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쿠션 모양을 한 청동조각을 제작하기 시작한 것. 자투리 천조각으로 만든 쿠션들과 청동 쿠션의 조합은 부드러움과 강인함의 묘한 조화를 이뤘다. 알록달록한 쿠션을 수백 개 연결해 용이 승천하는 듯 꿈틀거리게 연출한 작품은 아트바젤 홍콩이나 아트바젤 마이애미 같은 세계 최고의 미술 장터에서도 큰 호응을 얻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폴리코트라는 소재를 활용해 표면에 섬세한 문양을 내거나 비즈를 덧붙인 새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작가는 “일일이 하나씩 틀을 만들어 문양을 독특하게 표현해내고 이것들을 다시 붙이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고 말한다. 덕분에 기존의 금빛 브론즈에서는 느낄 수 없던 빨갛고 파란 색감도 즐길 수 있다.  
 
병원에서 쓰는 석고붕대에 물을 묻혀 만든 ‘부드러워 보이는 딱딱한’ 레이스 작품도 흰색 위주에서 분홍·코발트·블랙으로 색상을 확대했다. 특히 정원에 직육면체 거울탑을 두엇 설치하고 작품과 공간을 새로운 각도에서 볼 수 있게 한 작가의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일요일 및 공휴일 휴관.
 
정형모 전문기자/중앙 컬처&라이프스타일랩 hyung@joongang.co.kr

 

기사 원문 > https://news.joins.com/article/235606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