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한 이혜민 작가(51)는 이듬해 3월 스물다섯에 결혼을 했다. 시댁에서 신혼을 시작한 그는 지하실에 버려진 이불과 썩은 솜, 헌옷, 담요 등을 발견했다. 마땅한 미술 재료가 없어서 그것들을 자르고 바느질해서 베개 수십 개를 만들어 설치 작품을 제작했다. 작은 베개는 가로세로 8㎝였고, 큰 것은 가로세로 20㎝였다.그렇게 지난 26년간 만든 베개가 5000여 개에 달한다. 알록달록한 베개들을 이어 주렁주렁 전시장에 걸고 베개를 쌓은 형상을 청동 조각상으로 만든다. 그런데 왜 하필 베개일까. 작가는 "잠을 잘 때 베개는 꿈으로 안내하고 힘들 때 위로를 주며, 나만의 비밀 이야기를 들어줬고 눈물을 닦아줬다. 내 작은 꿈을 상징하는 베개 수천 개를 엮어서 작가라는 큰 꿈을 이루고 싶었다. 지하에 갇혀 있는 쓰레기로 만든 베개는 세계 전시장으로 가는 희망이었다"고 말했다.

1999년 큰 꿈을 이루기 위해 베개를 트렁크에 넣고 네 살 아이와 함께 미국 뉴욕대(NYU) 대학원으로 유학을 갔다. 동양적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베개는 어느 나라와도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였다. 연약한 천으로 만든 베개를 강하게 만들고 싶어 청동 작품으로 만들었다.

미술 재료는 멀리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작가는 2004년부터는 석고 붕대에 천착했다. 무리한 작업으로 팔에 마비가 오면서 감았던 석고 붕대가 너무 고맙고 소중한 친구 같았다고. 낡은 석고 붕대를 모아서 매일 물을 발라 레이스 형태로 다듬어 드레스를 만들었다.

 



그는 "남들이 하찮게 여기는 재료들이지만 나를 치유하는 석고붕대와 베개 등 가장 연약한 재료를 가장 강한 청동과 대리석 소재 작품으로 만들고 있다. 점점 단단해지는 내 예술세계의 표현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그의 개인전 `작은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A Thousand water drops)`가 9월 2일까지 서울 청담동 이유진갤러리에서 펼쳐진다. 인고로 점철된 오랜 작업 과정을 거쳐 제작한 작품 40여 점으로 전시장을 채웠다.

 

[전지현 기자]

기사 원문 > 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19/08/653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