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작
40여년 작가가 고민해온 '회화' 진면목
주제의식 드러내는 이야기그릇 탈피해
'나누고 채우고 찍고 긋는' 기본으로만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공중에 뜬 하얀 벌룬 같기도 하고, 눈이 큰 물고기가 둥둥 떠다니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옆으론 붉은 선으로만 몇 겹을 두른 비딱한 오각형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굳이 형체를 말하는 게 무의미한 듯한 화면. 이는 작가 설원기(68)가 빚은 ‘회화’의 진면목이다.

작가는 40여년 간 회화에 대해 고민해왔단다. 나날이 시각언어가 진화하는 미술현장에서 회화의 역할 혹은 그 가능성이 뭔가를 끌어내려 한 작업. 그러다가 도달한 지점이 여기였단다. ‘사소함이나 일상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무엇으로서의 회화’를 하자. 그림이 늘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데 동원되고, 이야기를 담는 그릇일 필요는 없다는 단호한 결론에 도달한 거다.

타이틀조차 ‘2019-54’(2019)로 담백한 작품은 오로지 ‘나누고 채우고 찍고 긋는’ 가장 기본인 방법만으로 캔버스를 채우고 있다. 콘셉트보단 붓을 다루는 화가의 리듬·속도를 먼저 봐달라는 의미, 그것이 그리는 일이고, 회화가 존재할 방식이란 의미다.

30일까지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77길 이유진갤러리서 여는 개인전 ‘아무것도 아닌 무엇’에서 볼 수 있다.

나무에 오일. 74×121㎝. 작가 소장. 이유진갤러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