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코르뷔지에의 LC 101 라운지 체어 옆에 선 컬렉터 루돌프 루에그. 1928년 디자인을 하이디 베버가 1960년에 원형 그대로 재현한 작품이다.

콘셉추얼 디자이너 빈티지 가구 컬렉터 전시 큐레이터 루돌프 루에그

빼어난 디자인 가구들은

순수미술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기능과 형태에 대한 깊은 탐구를 담고 있으며

최고의 장인이 디테일에 완벽을 기해

제작하기 때문이다

 

책임감이나 이성이 아닌 마음이 시키는 일에 몰두해본 적이 있는가? 여기 온전히 자신의 마음과 취향에 따라 가구 컬렉션을 이어온 한 남자의 이야기가 있다. 스위스 출신의 콘셉추얼 디자이너이자 빈티지 가구 컬렉터, 전시 큐레이터인 루돌프 루에그(Rudolf Ruegg). 그는 청담동 이유진갤러리에서 매년 ‘마음이 시키는 일’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연다. 지난 2일 오픈한 다섯 번째 ‘마음이 시키는 일’(10월 26일까지)은 20세기 희귀 가구를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현대미술과 디자인 가구가 공간 속에서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미감을 창조해 내는지 경험해볼 수 있는 전시다. 전시와 함께 서울을 찾은 루돌프 루에그를 만났다.

―‘마음이 시키는 일 5 - The Most Beautiful Bird of our Time’에 대해 간단한 설명 부탁한다.
 



“이번 전시는 이유진갤러리에서 하는 다섯 번째 전시이기도 하지만 주한 스위스대사관이 주관한 ‘취리히, 서울을 만나다’ 페스티벌의 일환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근무하셨던 아버지 덕분에 청소년기에 한국에서 살았던 개인적인 경험과 가구 컬렉션, 현대미술에 대한 내 탐구를 모두 녹여낼 수 있어 열정을 갖고 준비했다. 20세기 디자인 가구, 그리고 스위스와 한국의 동시대 아티스트들을 통해 두 나라의 접점을 표현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건축가 르코르뷔지에가 디자인한 구조적인 의자와 로버트 에스터먼의 개념미술이 만나고 초현실적인 스위스 캐비닛과 환상적인 조셉 초이의 페인팅이 어우러진다.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에게 가구에 대한 또 다른 시각과 신선한 경험을 안겨주고 싶다.”

―가구가 인테리어를 이루는 디자인 제품이 아닌 아트 오브제로 제시된 것 같다.

“그렇게 볼 수 있다. 내가 가구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 또한 빼어난 디자인 가구들이 생활용품이라기보다는 기능을 가진 조각 작품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시간을 품은 디자인 가구는 순수미술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기능과 형태에 대한 깊은 탐구를 담고 있으며 최고의 장인이 디테일에 완벽을 기해 제작하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 눈여겨봐야 할 가구 작품은 무엇인가?

“르코르뷔지에의 라운지 체어 두 점과 알프레드 로트의 바 트롤리를 꼽고 싶다. 르코르뷔지에의 LC 101 라운지 체어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1928년 르코르뷔지에가 샤를로트 페리앙, 피에르 잔느레와 함께 작업한 오리지널 디자인을 1960년 스위스 인테리어 디자이너 하이디 베버가 그에게 직접 허락받아 재현한 제품이다. 오리지널 버전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르는 동안 물자 부족과 이데올로기 변화로 생산이 중단된 상태였다. 베버는 르코르뷔지에 체어 네 점을 완벽하게 재현해 그의 건축 드로잉, 회화, 설계도 등과 함께 자신의 갤러리에 전시했다. 안타깝게도 베버는 르코르뷔지에 박물관 건립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LC 체어 시리즈에 대한 판권을 이탈리아 가구 회사 카시나에 넘기는데, 이후 이 라운지 체어는 효율적인 생산을 위해 많은 디자인 변형을 겪게 된다. 또 하나의 르코르뷔지에 라운지 체어는 LC 13으로, 공동 작업이 아니라 순수하게 르코르뷔지에만의 디자인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1931년, 프랑스 열차의 흡연 칸을 위한 라운지 체어로 디자인된 이 의자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시트가 프레임에 붙어 있지 않고 떠 있는 듯한 착각을 주는 플로팅 구조라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얘기할 바 트롤리(1932년 디자인)는 바우하우스의 특징을 간직한 매우 아름답고 기능적이며 유니크한 작품이다. 이 작품 또한 전쟁과 디자인 트렌드의 변화로 오랫동안 잊혔다. 로트 사후에 원형 그대로 스위스 금속 장인 발터 로러가 수제로 재생산한 작품은 여기 전시된 이 제품을 포함해 단 40점뿐이다. 색과 면 분할에서 나타나듯 알프레드 로트는 이 작품을 통해 몬드리안과 르코르뷔지에에 대한 경의를 표현하고 있다.”

―한국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인상적이다. 어떤 인연으로 함께하게 됐는가?
 

 

디자이너 알프레드 로트의 바 트롤리. 1932년 디자인.

“나는 숨은 보석을 찾는 것을 즐긴다. 이번에는 조셉 초이, 정지필, 이태수, 경현수 작가와 함께했는데, 이들을 만나게 된 계기는 나의 컬렉션 스타일과도 무관하지 않다. 컬렉션을 모을 때 나는 어떤 원칙이나 기준에 따르기보다는 온전히 나의 취향과 관점으로 만들어나간다. 특정 디자인이나 기간, 재질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컬렉션은 아름다움에 대한 나의 탐색의 여정이며 순수하게 직관에 의지한다. 이번 작가들 역시 이런 탐색의 과정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이다.”

―개성 있는 컬렉션을 이루게 된 당신의 배경은 무엇인가?

“나는 취리히의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다. 부모님이 예술 분야에 종사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스위스 사람이 그렇듯 집과 생활 방식에 민감했다. 우리 집은 건축가가 설계한 집이었는데 당시로는 보기 드문, 벽이나 칸막이가 없는 개방 구조의 컬러풀한 주택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디자인에 관심이 생겼고, 대학에서 자동차 디자인을 전공한 후 디자이너로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하지만 비용 절감과 빠른 생산에 치중하는 현대 디자인에 염증을 느끼게 됐다. 디자이너로서도 정체기가 찾아왔던 것 같다. 그때쯤 혁신적인 디자인은 물론 완벽함에 가까운 디테일을 구현한 20세기 중반의 가구에 매료됐다. 처음에 스위스 디자인 가구로 컬렉션을 시작해 유럽 디자인 가구로, 가구 전시로, 다시 현대미술과 디자인 가구에 대한 큐레이팅으로 일을 계속 확장해나갔다.”

―전시가 끝난 후 애정을 갖고 수집한 가구를 떠나보내는 것이 무척 힘들 것 같다.

“처음 컬렉션을 시작할 때는 판매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웨어하우스에 계속해서 수집품이 쌓여갔다. 그러다 전시를 시작하면서 나의 수집품에 또 다른 콘셉트와 질서를 주는 일에 큰 재미를 느꼈다. 전시 후에 작품이 새로운 효용을 찾아 떠나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마련한 돈으로 컬렉션도 더욱 넓힐 수 있었다. 물론 떠나보내는 것은 언제나 힘들다. 그것이 물건이든 사람이든. 하지만 그 또한 인생의 일부 아닌가.”

글 = 안나량 스타일에디터

사진 = 정지필 작가

 

기사 원문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9101101072212000002